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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축구 이대로 괜찮은가?

‘멘탈의 중요성’, ‘시스템’ 그리고 ‘철학’

본지 사회부 기자 김현수
본지 사회부 기자 김현수

(서울=우리뉴스) 김현수 기자 = 월드컵 최종예선이 한창인 가운데 축구경기 시청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나라 축구 시스템의 문제를 뭐부터 바꿔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한국축구국가대표팀 경기를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컸습니다. 패스를 해야 할 때 욕심을 부려 드리블을 하거나 각도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슈팅을 하고, 혼자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는 오히려 패스를 주니 ‘축구를 거꾸로’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선수들은 개개인 능력은 좋으나 큰 경기에 나서 중요한 순간에 아쉬운 판단을 하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 문제를 ‘두려움과 강박의 공존’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실수를 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반드시 잘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섞여 중요한 매 순간마다 경기집중력이 흐트러지며 판단오류를 범하고 맙니다. 이 심리적인 문제는 전 세계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겪는 과정이지만 유난히 한국 선수들에게는 이겨 내기 힘든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1996년부터 2018년까지 EPL 명문클럽 아스날FC를 이끈 아르센 벵거 감독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엘리트 수준의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스킬은 심리적인 부분이다. 축구에서 강한 멘탈(strong mentality)은 90%의 비중으로 중요하다”.

필자 또한 이 말의 공감합니다. 필자는 10년 이상 선수생활을 하면서 브라질, 스페인, 잉글랜드, 포르투갈 등 많은 나라를 거쳐 경험을 쌓았습니다.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한국선수들이 이 넓은 땅에 와서 자유롭고 편안하게 공을 찰 수만 있다면, 세계적인 한국축구선수들이 더 많이 배출될 수 있을 텐데’하고 말입니다. 필자가 해외에서 축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남 눈치 보지 않고 축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 ‘편안함’, 이 두 가지가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결여된 영양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 백만원 호가하는 약을 지어먹는 것 보다 중요한 게 심리적 안정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축구 인프라나 시스템은 어떻게 돼있습니까? 땅은 작고 인구는 넘쳐나는 나라에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과연 얼마나 있습니까? 가뜩이나 축구는 타 스포츠 종목과는 다르게 큰 규모의 경기장을 필요로 해 축구시설 인프라 구축이 쉽지 않은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기존 마을주민들도 쓸 수 있던 학교 시설은 현재 ‘학생 보호’ 명목 하에 사용이 불가합니다.

축구시설 인프라 구축 문제와 더불어 또 다른 문제는 초등학교축구부와 축구클럽의 갈등 양상입니다. 우리나라 축구유소년 시스템은 초등학교까지 학교축구부와 축구클럽 두 개로 나뉘어져 있지만 중학교부터는 엘리트선수 수요가 급감하기 때문에, 취미반 학생 위주로 매출을 올리는 축구클럽은 중학교 팀을 꾸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엘리트 선수를 희망하는 학생은 중학교에 입학했을 시 선택의 여지없이 중학교축구부로 진학을 해야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렇기에 부모 입장에서는 참 어려운 고민이 아니지 아닐 수 없습니다.

대게 축구부는 나이가 많은 감독들로 구성돼 있고, 아직까지 구시대적인 시스템일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모들 사이에 각인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나친 승리지상주의를 주입시키는 지도자들이 많은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축구클럽에서 축구를 시키자니 그것도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축구클럽에 들어가게 되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할 수 있지만 대다수 축구클럽은 정식 축구장을 보유하고 있지 않고, 취미수업 위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어 훈련량이 적고 훈련강도 또한 상당히 낮습니다. 결국 클럽축구에서만 축구를 하던 학생이 중학교축구부에 진학을 했을 시 적응문제로 인해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렇다고 학교축구부에 들어간다 해서 만사형통 하진 않습니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는 과로한 훈련과 경기량으로 인해 부상발생률이 증가하고, 반대로 후보로 뛰는 선수는 경기수가 적어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존감까지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자’라는 타이틀만 내걸었지 결국 선수들이 운동과 공부 둘 다 놓치게 만드는 꼴이 아닙니까?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 때 이런 과도한 불안·걱정을 야기함으로써, 선수들은 훗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될 확률이 농후합니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성인선수들의 경기력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필자는 여러 해결책을 요약해 딱 한가지를 제안하겠습니다. “이분법 흑백논리를 피해라”.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숙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균형’.

‘모 아니면 도’, ‘좌 아니면 우’, ‘성공 아니면 실패’, ‘승리 아니면 패배’ 등과 같은 극단적 단순논리는 지양해야 합니다. 21세기에 주입식교육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수많은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는 ‘비판적 사고’입니다.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의심하다 생기는 믿음이 참믿음이라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선수는 단순히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플레이하게 되면 더 높은 무대에 갈수록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필드의 주인공은 선수 본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반대로 지도자는 선수에게 ‘강요’가 아닌 ‘권유’를, ‘명령’이 아닌 ‘충언’을 했을 때 올바른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인생은 참으로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선택의 연속선상이죠. 특히 어린 시절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 수많은 고뇌로 잠 못 이루는 밤이 허다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외롭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필자는 이들에게 위로보단 공감을 해주고 싶습니다. 10년 이상 축구만 했던 시기에, 혼자서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갈등과 모순은 삶의 본질이다”라는 헤겔의 말이 생각나는 가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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