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우리뉴스) 이가은 기자 = 지난해 3월 23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하섬 해변에서 죽은 고래 한 마리가 발견됐다. 10m가 넘는 고래의 몸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태어난 지 1년 남짓한 새끼 보리고래였다. 이 아이는 왜 죽은 걸까?
전국의 전문가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인 가운데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에서 국내 최초로 고래의 과학적 부검이 이루어졌다. 죽음의 원인을 발견한 순간 과학자들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뚜껑이 내장 기관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무분별하게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새끼 고래 한 마리를 죽게 했다. 이 장면은 SBS 환경 다큐 ‘고래와 나’를 통해 방영돼 많은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2022년 2월 하와이 해변에 길이 17m, 무게 54톤이 넘는 거대한 향유고래 사체가 떠밀려 왔다. 고래의 배 안에는 폐플라스틱, 비닐 등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해 11월에는 캐나다에서 발견된 향유고래 배 속에서 150kg의 해양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1997년 여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하와이로 가는 요트 경기를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던 찰스 무어는 우연히 이상한 섬을 발견했다. 해류가 모이는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다. 훗날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태평양 거대 쓰레기 섬’은 이렇게 발견됐다.
현재 그 면적은 160만㎢ 이상으로 불어났다. 우리나라 영토의 무려 16배에 달하는 넓이다. 국제 해양 환경단체인 ‘오션 컨서번시’에 따르면 매년 800만 톤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루에 한 트럭 분의 폐플라스틱을 바다에 쏟아붓는 양이다. 대부분의 해양 쓰레기는 바로 그 플라스틱이다.
해양 쓰레기 청소 비영리단체 ‘오션클린업’의 설립자 보얀 슬랫은 “더 많은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을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바다에 이미 존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적극적으로 청소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분해 과정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돼 바다를 오염시킬 뿐 아니라 해양 생물에 흡수된 후 결국은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은 줄지 않고 있다. 해양 생물의 피해도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16일 UN 환경 프로그램(UNEP)은 전 세계 플라스틱 오염을 2040년까지 80%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정부 정책과 플라스틱 산업 변화가 없다면 플라스틱 폐기물은 2억 2,700만 톤이 되겠지만, ‘조치를 취한다면’ 2040년에 약 4,000만 톤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치를 취한다면’ 말이다.
과도한 포장과 같은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것, 리필 가능한 병과 같은 플라스틱의 재사용을 늘리는 것, 재활용을 촉진하는 등 플라스틱을 더 친환경적인 대안으로 대체하는 것 등이 바로 지금 즉각 필요한 조치다.
“플라스틱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
바다는 인류의 미래다. 더는 플라스틱이 우리의 미래를 병들게 두면 안 된다. 지금은 고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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